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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었던 기억들/2010년 백수놀음 2011/08/24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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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성내동 성당 미사, 죽서루) - 경상북도 울진(망양정, 성류굴)

어젯저녁에 길거리 식당에 들어가 보리밥과 감자전을 주문했다. 합쳐서 5,000원 어치인데 푸짐하게도 나오더라. 감자전에 술이 없으니 아쉽지만 한 병 다 마시지도 못하고 돈 아깝기도 해서 참고 있는데 조금 후에 들어오신 아저씨께서 소주 한 병 시키시더니 남기실 참이다. 망설이다 부탁했더니 흔쾌히 남은 반병을 아낌없이 다 따라주신다. 좋다. 하하.
 
오랜만에 미사를 드렸고, 성류굴은 신비로웠다. 내일은 일출을 보고 싶은데 날이 맑으려나. 태백산맥에서 뭉게구름 몰려오던데.

여느 때처럼 꿈은 소란스러웠다. 나는 꿈속에서도 여행 중이었다. 보고 싶은,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왔지만,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마음이 좁아졌지만, 별 상관없었다.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상관없다. 바로 어제 연락했던 사람들도 나오고 4년 전에 보고 이후로 연락조차 하지 않은 사람도 나오고 그 모든 사람들이 함께 북적거렸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무척 외로워졌다.
아, 맞다. 밤중에는 꿈속에 회가 가득 차려져 있었는데 먹으려는 순간 스팸문자에 깨서 진짜 짜증났다.

아침에 일어나 씻고 다시 어제 온 길을 거꾸로 걸어 성내동 성당으로 돌아가 미사를 드렸다. 성내동 성당은 지정근대유적물이었다. 근대문화유산서 미사를 드리니 여행하는 느낌이 한층 더해져 괜히 즐거웠다. 언덕 위에 있는 성내동 성당에서 내려와 죽서루를 한 번 더 들렸다. 관동팔경을 이대로 떠나기 아쉬워 들린 거였는데, 뭔가 소란스럽다 싶더니 글짓기 대회가 시작하려는 참이다. 아이들이 점점 모이기 시작하더니 모든 벤치뿐만 아니라 죽서루 위까지 차지했다. 어제의 고요한 죽서루는 기대조차 할 수 없었다. 그냥 한 바퀴 둘러보고 나와서 터미널로 향했다. 울진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삼척시내에서 울진읍내로 향하는 길 위에는 남근상이나 남근을 상징하는 조각품이 가득하다는 해신당 공원이나 동해안 3대 미항 중 하나라는 장호항, 그리고 사진으로 유명한 월산리 솔섬이 있다. 삼척의 제일 볼거리인 환선굴과 대금굴도 보지 않았는데, 이렇게 삼척을 떠나도 되는지 모르겠다. 아쉽긴 하지만, 시간 맞춰 대전을 들리고 집에 가려면 다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아직 관동팔경도 두 개나 남았고. 아쉬움을 남기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본다.
울진으로 가는 한 시간 반가량 굽이굽이 국도를 지나면서 머무르지 못해 아쉬운 장호항이나 해신당 공원을 슬쩍 볼 수 있었다. 사실 '미항'이라던가 '나폴리'라는 비유는 너무 과분한 것이 아닐까했지만(비단 장호항이 아니더라도, 우리나라는 여기저기 너무 과장된 비유를 한 곳이 많은 것 같다), 그래도 주황색으로 맞춰진 마을 지붕들이 좋았고, 파도가 부서지는 돌섬이 많아 남애항만큼이나 포근하면서도 유쾌한 긴장이 더해졌다. 해신당 공원은 굽이굽이 돌아가는 길 덕분에 꽤 오래 구경할 수 있었는데, 멀리서도 민망한(!) 조각품들이 확연히 눈에 들어왔다. 저긴 혼자 가고 싶어도 못 갈 것 같다. 우리나라에 저런 곳이 있었다니.
비단 장호항이나 해신당 공원이 아니더라도 바다를 끼고 달려가는 버스는 즐거웠다. 수평선이 좋다. 굽이굽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길이 좋다. 해신당 공원을 지나고 나서도 임원, 노곡, 원덕 등의 마을을 지났다. 긴 시간 동안, 많은 마을을 지났지만 고요한 점심나절의 공기만큼이나 사람이 없었다. 원덕에서 버스를 탔던 한 무리의 아이들이 북면에서 내렸을 뿐이다. 잠들 것 같이 나른했다. 하늘은 무척이나 맑고, 티 없이-

울진에 도착하니 꽤 허기가 졌다. 점심을 뭘 먹을까하며 울진 읍내를 헤맸다. 읍내 가장 남단에 있는 터미널에서 큰 길을 따라 북쪽으로 쭉 올라가다 군청까지 계속 걸었다. 오른쪽을 보니 시장이 있기에 시장 안에 싸게 먹을 것이 있을까해서 들어가 기웃기웃 거리니 포장마차 식으로 차려진 잔치국수 집이 보인다. 김치와 약간의 야채 고명을 올린 삼천 원짜리 잔치국수를 주문해서 후다닥 먹어치우고 다시 거꾸로 내려왔다.
울진에는 보고 싶은 것이 많다. 일단 관동팔경도 두 곳, 망양정과 월송정이 있고, 작은 도시임에도 론리플래닛 가이드 북에 매력이 많은 도시라고 말하며 성류굴과 불영사 등을 소개하고 있다. 오늘 해지기 전에 망양정과 성류굴을 들려볼까 했는데, 어느 곳이든 교통편이 마땅치 않다. 그나마 있는 버스는 2시간 뒤. 망양정이나 성류굴 둘 다 걸어서 한 시간이내에 있는 거리니까 그냥 걷기로 했다. 햇살이 따사롭다.
큰 길을 따라 남쪽으로 쭉 내려오다가 망양정과 성류굴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사거리에서 일단 망양정을 택했다. 인터넷으로 봤을 때는 망양정으로 가는 길에 찜질방이 있었는데 비수기라 그런지 영업을 하지 않았다. 내일 아침에 일출을 보고 싶은데. 읍내에서부터 나오려면 한 시간을 걸어야 한다. 좀 끔찍한데. 어떻게든 되겠지. 일단 길이나 익힐 겸 망양정이 놓인 언덕을 올랐다. 망양정에 서니 소나무들이 바다를 좀 가리는 것이 아쉬웠다. 하지만 건물도 아니고, 소나무를 어찌 탓해. 그보다는 콘크리트로 대충 재건한 망양정이 불만이었다. 숙종이 영남 제1루라고 칭찬했다는 망양정이라지만, 원래 위치에서 옮겨졌을 뿐만 아니라 누각 자체도 2005년에 새로 지은 거라 그런지, 감흥이 좀 떨어졌다. 그저 잠시 걸터앉아 있다가 내일 아침 일출과 함께 확실히 즐기겠다는 생각으로 서둘러 내려와 성류굴을 향했다.

성류굴까지도 마땅한 교통편이 없어 다시 걸었다. 다시 한 시간이 걸렸으니, 총 두 시간을 걸은 셈이다. 가로수가 늘어선 강둑길을 따라 걸으니 여느 계곡의 관광지마냥 평상이 깔린 음식점들이 나타났다. 은어 튀김이 먹고 싶다는 마음을 참으며 동굴을 향하는데 한 아주머니께서 가방을 들고서는 구경하기 불편하니 평상위에 두고 가라신다. 괜히 경계하는 마음을 풀고 감사하다 말씀드리고는 가벼운 몸으로 동굴을 향했다.
동굴 입구는 무척 작았는데, 안으로 들어가니 생각보다 넓은 공간이 있었다. 철제 계단을 따라 둘러본 동굴은 '와, 신비롭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보존을 위해 최소한의 불빛을 밝힌데다 벽에 몸이 닿을 수밖에 없을 만큼 좁은 통로도 많아서 정말로 동굴을 탐사하는 것 같았다.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환선굴은 훨씬 크고 조명도 좀 더 화려해서 환상적이었음에도 관광지 느낌이었던 것 같은데, 여긴 정말 동굴이구나 싶었다. 사람도 많지 않아 혼자 다니기에 무서울 정도였다.
동굴 개방 길이가 270m, 왕복 540m라기에 10분이면 다 둘러보지 않을까했는데 그 정도로 될 곳이 아니었다. 왔다갔다하며, 기웃기웃 거리며, 종유석과 석순, 석주 등을 하나씩 보고 사진을 찍으려 애를 쓰며 두 시간 가량을 동굴 안에서 보냈다. 꿀렁꿀렁거린다고 해야 할지, 출렁거린다고 해야 할지, 하여간에 뭔가 넘쳐흐른 것만 같이 생긴, 촉촉해 보이는 자연 조각들이 자꾸만 걸음을 붙잡았다. 사람 손이 타 검게 변해버린 좁은 통로도, 석회 조각들이 조화롭게 배치된 넓은 공간도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다. 지하수가 넘쳐 물속에 잠긴 석순과 석주도 신기했다. 종유석들에 이름을 붙인 센스도 장난 아니다. 하마, 마녀, 마리아, 부처, 에덴, 아담과 하와, 등등. 동굴이 끝나는 지점에서는 무척이나 아쉬웠다. 이 뒤로도 공개되지 않은, 더 넓고 긴 길이 있는데. 궁금하다. 궁금하다.
하여간 다 좋았는데, 행여 소지품을 떨어뜨리진 않을까 겁이 났다.

성류굴의 신비로움에서 빠져나오는 데는 한참 걸렸다. 아까 가방을 맡겼던 상점의 아주머니가 나를 보더니 잘 봤냐고 물어보신다. 네, 멋있었어요, 환하게 웃으며 답하니 싱긋 웃어주시며 잘 가라며 조심하라고 당부하신다. 버스 타는 곳까지 나오니 5시경. 읍내로 가는 다음 버스는 6시 20분에나 있다. 걸어갈까 하다가 아무래도 힘들어서 기다리자 생각하는데, 주차장을 관리하는 아저씨들이 아까 그 성류굴과 망양정으로 가는 길이 갈라지던 사거리까지만 나가서 버스를 타란다. 오후가 젖는 하늘을 보며 걷다보니 좀 전에 아주머니께서 외롭지 않냐고 물으신 것이 생각난다.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나이가 많이 들어도 외로워지고 싶지 않다. 차라리 익숙해져서 외로움을 느끼지 않고 싶다.
2km를 걸어 나와, 버스정류장에서 어떤 버스를 타야 하는지 가까운 이발소 아저씨께 여쭈니 무척 친절히 가르쳐 주시면서 나를 따라 나오기까지 하신다. 옆에 계신 연로하신 할머니께서도 말을 거신다. 이런 호의를 나는 좀처럼 호의로 받아들일 줄 모른다. 물건을 파는 이들에게는 행여 물건을 사라고 권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말을 거시는 할머니를 보면서는 많이 외로우신 걸까라고 생각해버린다. 한심하게도, 경계하고 뭔가 얻고자 한다고 생각하고 의심한다.
읍내로 돌아와 내일 새벽에 망양정 쪽을 향하는 첫차 시간을 확인하고, 터미널에서 찜질방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걸어보고 밥 먹을 곳을 찾아 읍내를 한 시간 가까이 헤매다가 어디에도 마땅히 내키는 곳이 없어 대충 중국집으로 들어갔다. 그래도 울진이라 해산물을 먹고 싶었는데 눈에 띄는 곳이 없다. 그나마 삼선볶음밥이라도 먹을까 하다 맘 편한 가격이 아니라서 그만 두었다. 그래도 볶음밥은 꽤 맛있다. PC방에 들렀다 찜질방에 들어갔다. 찜질방은 마을회관 같은 분위기였다. 아담하고 조금은 정돈되지 않은 모양새가 맘에 들었다. 사람이 없어 불이 일찍 꺼졌다. 이불까지 제공되는 것에 감동하며 일찍 잠들었다.
내일은 일출을 보러 가려한다. 내일 아침은 맑을까.

찜질방 8,000원(울진) PC방 1,700원
아침 1,400원(편의점), 점심 3,000원(시장잔치국수), 저녁 5,000원(중국집 볶음밥)
성류굴 3,000원, 간식 1,500 + 1,000원
버스 7,500+1,000원(삼척-울진, 사거리-울진)
합 33,100원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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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24 00:02 2011/08/24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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